이제는 쫌…

2006 8월 112. 힐링 에세이2 코멘트

 

태왕과 왕은 격과 의미가 다르다.

우리 역사에 위대한 정치가인 임금이 광토태왕이다. 그 분이 붕어한 지 2년째 되던 해인 414년에 아들인 장수(대)왕이 세운 비문에는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國剛上廣開土境好太王),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고 하였다. 또 그 분이 생존했을때의 무덤인 모두루총의 묘지석에는 국강상광개토지호태성왕(國剛上廣開土地好太聖王), ‘일월지자(日月之子)’라는 표현이 있다. 또 경주의 호우총에서 발굴된 청동합 명문에는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國剛上廣開土地好太王)이라고 되어있다. 그 후에 세워진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중원고구려비문에는 高麗太(大)王이라고 새겨져 있다. 물론 그 호칭의 주인공은 광개토태왕의 아들인 장수대왕이거나 증손자인 문자명왕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에서는 왕이 아닌 태왕이나 대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이 틀림없다. 금석문에서도 고구려의 연호들이 나타나는 것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이르러 김부식은 역사를 다시 쓰면서 삼국사기라는 책에다 광개토왕(廣開土王)이라고 하였고, 우리도 무심코 혹은 당연하듯이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그 시대에 쓴 금석문과 다시 수백년이 흐른 후에 유학자가 쓴 삼국사기 가운데 어느것이 더 진실을 전하고 있을까?

 

 

 


작성자 : SA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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