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의 미학

2005 Dec 112. 힐링 에세이0 comments

 

요즘 세태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그 中 하나는 “복종”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자칫 굴욕스럽거나

손해라는 생각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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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용운 선생의 시를 음미해 보니

복종의 어머니는 바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전으로 치면 “복종”의 뒷면은 바로 “사랑”이라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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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상사가 한마디 하면 후배나 부하들이 복종해 줍니다

의견도 있고 할말도 있긴 하지만…

기꺼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라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사랑과 신뢰를 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한용운 선생의 詩 한 편

“복 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해설>

모든 문학 작품은 여러 차원으로 읽힌다.

만해(萬海) 한용운의 <복종>도 여러 차원으로 읽히고

시편의 매혹과 견인력도 바로 그 점에서 울림과 힘을 얻는다.

여기서의 당신 즉 “임”은 우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읽을 수 있다.

사랑은 때로 배타적 헌신을 요구한다.

또 사랑에 빠진 사람은 배타적 희생이나 순종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랑 특히 열정적인 사랑은 독점이나 배타성과 이어져 있다.

헌신과 복종의 강도는 그대로 사랑의 강도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임”은 다시 민족이나 조국이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1919년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일원이며

겨레 사랑과 투철한 반일(反日)정신을 알리는 많은 일화를 남겨놓고 있는 지사(志士)이다. 사저를 지을 때 조선 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삼대가 적선을 해야

살 수 있다는 남향을 마다하고 북향집을 지었다는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일화이다. 만해의 개인사와 연결시킬 때 시편 속의 “당신”을

겨레나 조국이라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겨레나 조국의 명령이나 당부에 복종하는 것울 달콤하다고 생가하기 때문에

많은 우국지사들이 개인적 희생과 헌신을 실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편은 우국지사 한용운이 겨레와 잃어버린 조국에 바치는

간절한 신앙 고백이라 읽어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 작품은 종교 시편이라 읽을 수 있다.

만해 선사는 승적에 있었던 승려이다.

그가 머물러 있으면서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 했던 설악의 백담사는

이제 한국의 명소의 하나가 되어 있으며 그가 남긴 불교 서적은 그 방면의

고전이 되어 있다. 관용과 자비를 설파하는 고급 종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는 성격상 절대적 복종과 귀의를 요구한다.

종교는 표층적이건 심층적이건 유일 종교를 표방한다.

따라서 이 시편에서의 “당신”은 절대자나 초월자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읽힌다. 아니 그렇게 읽을 때 비로소 작품의 의미가 가장 심오하게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대목은 아무래도 울림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한용운의 유일한 시집 [님의 침묵]은 만해가 46세 되던 1925년에 탈고

하여 그 이듬해에 회동서관에서 발행하였다. 그 이후 극소수의 단시(短詩)와

시조를 보여주긴 하였으나 작품으로서의 진경(進境)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으니

다시는 시작(詩作)에 손대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평소에 그가 시작에 열중하였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래서 시집 한 권을 며칠 밤 사이에 써냈다는 확인할 길 없는 소문이 퍼진 것이리라. 습작 과정이 없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의 시집은 놀라움이요 하나의 경이이기조차 하다.

그래서 한용운의 시집은 20세기 한국 문학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선종(禪宗)에서의 득도(得道)가 그대로 탁월한 시적 성취로 이어졌다는 말은

그러므로 설득력이 있다. 일정한 수준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문적 시인의 특징이라고 할 때 만해는 통상적인 직업적 시인은 아니다.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의 아마추어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 수준의

시집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만해의 특징이다.

<출처 : 시 읽기의 방법 /삶과꿈 刊/ 유종호 지음


작성자 : C I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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