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2011 Sep 712. 힐링 에세이0 comments

 

 

어머니 생각만해도 눈물이 납니다

저는 5월 8일 어버이날에 지방에 계신 어머니께 다녀왔습니다.

그 다음날은 생신이시기도 해서 미리 8일에는 아무런 상담을 받지 않도록 하고 새벽같이 떠났습니다. 얼마전 어머니께서 검사를 받으셨는데 파키슨병이라는 병명을 받게 되셨거든요.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어머니의 병명을 제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으니 본인은 더 하셨겠지요.

 

몇 년 점부터 손을 조금씩 떨기 시작하셨는데 저와 가족은 모두 어머니의 지병인 당뇨의 합병증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매해 하시는 검진이나 자주 가시는 병원에서도 다른 말슴이 없어서… 당뇨 관리만 잘 하시길 바랐거든요. 4~5년 전부터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면 손을 좀 떠시고… 시간이 가면서 어느 날 젓가락 사용을 줄이시고 가끔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드셔서 속으로 속상하단 생각을 했었거든요.

 

어머니는 저희가 어릴 적부터 식탁의 예절을 따끔하게 가르쳐주시던 분이셨기에 더 이상했지요.

“엄마. 왜 젓가락 사용을 안 하시고… 손으로 하세요?”라고 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럴때면 어머니는 “글쎄다. 자꾸 손이 떨려서 음식이 제대로 안 집어져서 그래…”라고 하셨지요.

지금 그런 말을 했던 제 자신이 너무 후회되고 어머니의 몸 상태를 헤아리지 못하고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8일에는 어머니가 병원에서 외출 허럭을 받고 1박 2일 나오셨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오시기 전에 가족 모두 모였습니다.

마침 외삼촌과 이모네 가족 까지 다 와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손주들이 다 온 모습에 좋아하시면서 한명씩 안아 주셨습니다.

아니 저희가 안아드렸지요. 어머니의 떨리는 손과 몸이 안타까워 더 꽉 안아 드렸습니다.

 

가족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저는 누워 계신 엄마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요. 엄마의 겨속적으로 덜덜 떨리는 손을 꼭 쥐고 함께 누워서 엄마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 했습니다.

“엄마… 지금 무슨 생각해?”

“글쎄. 아무 생각도 없어.”

“엄마. 지금까지 사시면서 제일 행복했을 때가 언제야?”

“나? 글쎄… 30대? 40대?… 그 다음은 그냥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다… 니 아부지 병나시고 그 병 수발 하느라… 벙신없었어.”

 

“엄마 지금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아니… 없어… 그냥 잘 죽어야 할 텐데. 너희들 고생 시키지 않고…”

“엄마… 무슨 고민이나 걱정이 남아 있는 게 있으세요?”

“없어… 아니다. 있다. 두 아들들이 걱정이지…  니 오빠는 지금 그대로 그냥 살아도 될 것 같고… 막내 태현아빠가 늘 걱정이지. 잘 안 풀려서. 내가 죽기 전에 잘 되는 것 보고 가야하는데….

 

“엄마… 이번에 알게 된 병 받아들이기 힘들지?”

“그래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손이 떨리고 흔들거리고 천천히  걸으려고 마음먹어도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막 앞으로 급하게 가는 거야…….”

“엄마… 미안해.  엄마가 전에 손을 떨 때 내가 잘 알아차리고 뇌 검사를 했어야 했는데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어.”

“…….”

“엄마, 그래도 요즘엔 좋은 약이 많으니까 포기하지 마.”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 안하셨어요. 엄마의 눈을 들여다보니 아버지가 반했던 그 예쁘던 눈이 이제는 초점도 없이 멍한 힘없는 눈이 되어 버리셨어요. 저희 엄마 눈은 정말 예쁜 눈이었거든요.

 

그날 밤 저는 엄마랑 함께 잠을 잤습니다.

주무시기 전에 보행이 불편하신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엉금엉금 기어서 이방 저방 모여서 자는 가족들을 한명씩 다 들여다보시더라고요.

다음 날 아침에는 딸들이 저마다 어머니가 한 번만이라도 더 드셨으면하는 마음으로 해온 음식들과 밑반찬들로 상을 차려 드렸습니다. 두 세 수저 드시곤 이내 수저를 내려 놓으셨습니다.

조금 만 더 드시라고 해도 고개를 살살 흔드시며 뒤로 물러나시더니 마당을 내다 보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시고 꽃 밭 가꾸시길 매일 기도처럼 하셨는데 병원에 입원하신 몇 달 동안 썰렁했던 마당에 잠깐 외출을 나오신 엄마를 위해 오빠가 마당 가득히 꽃을 심어 놨더라고요.

이쁜 팬지며 베고니아를 앞마당에 가득히 심어 놓은 것을 보시곤 좋아하셨어요. 어머니가 가꾸시던 마당엔 할미꽃과 며느리밥풀 꽃이라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었어요. 뒤마당의 벚꽃이 지는 것을 보시고는 저에게 “언젠가 수녀가 얻어 다 준 벚나무가 이리 컸구나 재작년엔 세 알… 작년엔 다섯 알 달렸었는데 올핸 몇개나 달릴까?” 하시네요.

 

서양 버찌가 달리는나무여서 어렵게 얻어다 어머니 마당에 심어 드릴 때 너무 좋아하셨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떠나올 땐 모두 어머니를 한 번씩 꼭 안아 드렸습니다. 참 자그마하시고 몸이 얇다는 생각에 엄마랑 눈을 마주칠 수 없어 엄마 볼에 제 볼을 갖다 대었습니다.

모든 손주들도 어쩌면 직장 생활에 할머니랑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눈시울을 붉히며 할머니, 외할머니를 안아드렸습니다.

 

매일 밤 9시에는 모두가 어머니를 기억하며 기도하자고 약속들을 하면서 형제들이 헤어졌습니다.

어머니.

이 단어만 불러도 눈물이 나지요.

더 잘해 드릴 걸.

왜 젓가락으로 안 드시고 손으로 드시나요… 그 말을 주워 담을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철없이 엄마 마음을 아프세 했던 말들을 다 담아 올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곳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더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에게 전화해서 “엄마. 고마워. 엄마. 감사해…”

그랬는데 그런 전화라도 계속 드릴 수 있는 엄마.

어머니가 좀 더 오래 계섰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저는 이번 5월 어버이날 1박 2일을 이렇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어느 모임에 갔을 때 잠깐 옆 자리에서 보여주신 노인들에 관한 자료와 물건들을 찍은 사진 중 노인들이 사용하시는 수저가 생각이 났습니다.

약간 안쯕으로 휘어져서 나오는…

그래서 노인들이 좀 더 수월하게 음식을 드실 수 있도록 디자인 된 수저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구해서 어머니께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햡니다.

 

직원이 조직의 한 부문에서 일을 하면서 그 역할의 중요함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케스트라 공년 중 심벌즈의 역할은 계속 연주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시점에서 박자를 놓치면 그 연주 전체를 망치게 한다.

 

도전하는 자는 아름답습니다. 도전하는 젊음은 아름답습니다. 도전과 응전, 이것은 젊음의 특권입니다. 젊고 늙음은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나이가 많아도 생각이 젊으면 젊은이요, 육신의 나이가 젊어도 생각이 늙었으면 노인일 것입니다.

 


작성자 : 민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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