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과 메세지가 있는 영화 IV] 사랑과 영혼
맑고 청순한 이미지의 몰리(데미무어) 그리고 샘(페트릭 스웨이지) 두 세계를 잘 그려준 제리주커 감독의 사랑과 영혼.오래전에 받았던 그 감동이 오늘 더 새롭고 크게 다가오는 것은 순수 의식으로 감각이 열려있음 일것이다. ^&^
현실과 영적인 세계가 둘이 아닌 한 차원에서 존재하고 있으며 ,정말 몸이 있을때 의식성장을 할수 있는 좋은 일들을 해야겠구나 하는 메시가가 담겨있는 작품이다.
인디언 동전을 통해 영적인 차원을 암시하고 “난 항상 좋은 일이 있게되면 놓칠까봐 걱정이 돼” 샘의 대사를 통해 집착이 묻어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TV(사고현장)를 지켜보며 “이상하지 저렇게 되고는 끝이야?” 죽음에 대한 단순한 정리와 현실 가까이에 있음을 지적해주고 있다.
다정하고 행복한 순간을 지나 찰나에 육체는 총을 맞고 누워 있고 영이 빠져나가 뛰어가 보지만 죽음이후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있음을 알수있고, (몸+집) 몸이라는 집속에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몸이 내가 아니라 근원적인 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지금까지 당신은 몸을 위해서 살았는가? 영혼을 위해서 살아왔는가?
천상으로 오르는 빛을 보고도 오르지 못하는 샘.이는 반대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퍼하는 몰리가 샘의 영혼을 붙잡고 있을수도 있다.당신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감 차원에서는 육감(식스센스)의 차원을 느낄 수 없으며 영화에서 처럼 고양이는 영적인 차원을 볼수 있다고 한다.그래서 고양이를 영물이라고 하나보다. 사실 동물들은 단순할 뿐이지 분별한다거나 믿음을 머리로 판단하지는 않는것 같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짚어보자.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자신과 하늘에 지내는 천제라는 의식 높은 차원과 땅에 지내는 제사가 있었다. 천제와 달리 제사를 지낼때 문을 열고 지내는 것은 아직도 살아 있을 때의 의식이 그대로 유지되어 문을 열지 않고는 들어올수 없다고 생각하는 차원에 있기때문이다.
점술학자 오다매의 등장으로 조금씩 정리가 되어간다.샘의 노래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거나 또다르게는 가위 눌렸다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으며.몸이 건강하고 높은 의식 차원에서 원리가 정리되어 있을 때는 스스로 보고 판단 할 수 있지만 몸이 허약하거나 의식이 높지 않을때는 다른 영의 지배를 받게된다.
무당의 차원을 보면 원리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아 다른 영이 내 몸을 빌어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건강한 사람과 달리 허약한 사람에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내 몸을(의식성장을 위해) 쓸려고 하는 다른 영을 이겨낼수 있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죽었으며 오다매를 통해 수녀들에게 수표를 건내주라고 하며 ”
내게 감사할 날이 올거야”죽음 이후에 잘 써야 함을 깨달은 샘을 통해 지금 우리는 몸이 있고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고 정말 잘 살아야 하겠다.
살아 있을때 악하고 저급한 영들은 죽을때 저승 사자가 데리고 가는 장면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ㅋ
의식 레벨이 높은 선하고 밝은 영혼은 두세상 사이에 끼어 있지 않고 내려 올수도 있고 올라 갈수도 있다. 이제 몰리에 대한 집착을 마음 속의 사랑으로 승화시킨 샘. 천상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으며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지면
이제 남녀 차원의 작은 사랑에서 이시대를 품을수 있는 넓고 큰 사랑은 바로 당신의 몫이다.
작성자 : StreamOfConscious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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