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과 메세지가 있는 영화 VII] 디 아더스

2008 Apr 2412. 힐링 에세이0 comments

 

죽은자와 산자가 섞여 사는 현실 속에서 죽은자의 세계를 잘 그려놓았으며 또한 살아 있을때 왜 의식성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 같은 영화이다.

안개가 짙게 깔린 해안의 큰 외딴 저택. 전쟁터로 남편을 떠나보낸 독실한 기독교 신자 그레이스(니콜 키드먼)는 밝은 빛을 싫어하는 의문의 희귀병을 가진 두아이와 살고있다.

집안일을 돌보던 하인들이 갑자기 사라진 이후. 예전에 이저택에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세명의 하인들이 찾아들면서 영화의 실체가 풀려나간다.

집안 분위기가 빛을 차단하고 항상 커튼이 쳐져있어야 하고(어둡고 낮은 레벨) 문이 잠겨있어야 한다는 절대규칙을 통해 불안과 두려움을 쉽게 찾을수 있다.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면서 신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강한 그레이스는 잘못 전해진 종교적 관념이 현실적 딸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게 되고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신부님을 찾아 나서게 된다. 안개 때문에 헤매다가 때마침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을 만나게 되고 집을 찾아 헤맸다는 이상한 말을 듣게 된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죽은자와 산자의 묘한 차이를 스스로에 대한 의식 체크를 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찾을수 있을 것이다.

의식이 낮은 단계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하고 밝은 것을 피하게 된다. 또한 이런 상태에서 죽으면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며 그래서 마치 자신이 살아 있느냥 떠돌게 되는데 이를 흔히 귀신이라고 한다.그리고 살아 있을때의 그 의식 그대로이기에 죽어서도 마님이고 하인으로 알고 있으며 집을 떠나지 못하고 이 집이 내꺼라는 집착 차원을 벗어 날수 없다.

재물이 많거나 지식이 높은 것과 의식 레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 재벌이 유산을 가족이나 아들에게 물려주는것과 시장에서 콩나물을 판 일생의 재산을 사회 전체를 이롭게 내놓는 사람과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그레이스가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했던 것은 용기가 아니라 아주 낮은 죄의식이나 두려움의 차원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바르게 잘 믿지 못한 종교적 정보의 한계로 인해 죽어서도 아이들을 죽였다는 죄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산자와 죽은자가 같이 지내는건 신께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장면은 죽은자는 더이상 이생에 대한 집착을 갖지 말라는 의미 일것이다. 지금 당신이 죽는다면 돈과 명예와 욕망을 내려 놓을수 있는 의식 상태인가?

바로 의식성장의 이유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으면서도 꽉 차 있는 공기 속에서 과거와 미래, 죽은자와 산자가 섞여 사는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이다.

공간에 대한 관심과 감각적으로 열려 있는 순수함 이라면 영화에서 처럼
앤과 빅터는 시공간을 넘어 서로를 볼수 있고 느낄수 있는 것이다.
니콜라스가 보지 못한것은 소극적이고 두려움 때문이며 그레이스는 죽어서도 한차원에만 집착적으로 메여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죽은자의 집착적 에너지가 산사람을 떠나게 했으며, 그래서 옛날 부터 집터가 쎄다 든지 하질 않던가? ^&^

전체를 보는 성장된 의식 만이 또다른 차원을 포용할수 있다.

추천도서: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브라이언 와이
의식 성장을 하지 않으면 비슷한 차원으로 계속 태어남에 대한 정리

 

 


작성자 : StreamOfConscious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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