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윤봉길 의사 친필유서 첫 공개

“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기자 =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에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가 `훙커우(虹口)의거” 이틀 전 거사장소를 답사한 뒤 두 아들 모순(模淳)과 담(淡)에게 유언으로 남긴 시의 일부다.`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는 윤 의사가 거사 장소인 상하이(上海) 훙커우공원을 답사한 후 비장한 심정으로 쓴 이 유언의 친필 사본을 윤 의사 순국 73주기를 하루 앞둔 18일 공개했다.유언시 내용은 그동안 일부 알려졌지만 친필유서의 전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유서가 적힌 윤 의사의 수첩 원본은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해방 후 갖고 귀국한 뒤 해외에 유출됐다 다시 돌아와 현재 서울 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지만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다.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이 유서는 유 의사가 거사 이틀 전인 1932년 4월27일 훙커우공원 답사 후 숙소인 동방공우(東方公寓)에서 김구 선생의 요구로 쓴 것으로 흘겨 쓴 필체와 고친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윤 의사는 김구 선생에게서 이력서 작성을 요구받고 이력서와 함께 거사가(擧事歌), 조선청년단에 대한 당부의 시, 김구 선생에 대한 존경의 시, 두 아들에게 남기는 유언 등 4편의 시를 2시간 만에 써내려 갔다.윤 의사 조카인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윤주 이사는 “달필로 알려진 윤 의사가 흘겨 쓰고 고쳐 쓴 유언을 보면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올해가 광복 60주년인데도 아직도 친일청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다 역사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독립정신과 `무덤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으라”는 유언을 되새기자는 뜻에서 친필유서를 처음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윤 의사는 1932년 4월29일 거사 직후 현장에서 일제 군경에 체포돼 군법회의에 넘겨져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 오사카(大阪)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그 해 12월19일 총살형으로 순국했다.기념사업회는 19일 오전 서울 효창공원 윤 의사 묘역에서 순국 73주기 추도식을 연다.kaka@yna.co.kr (끝)

출처 : 연합뉴스 / 2005-12-19


작성자 :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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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내가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

\”내가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공아空我

 

공아란 “내가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착한 사람은 무리와 함께 있을 때는
무리를 위해 자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무리와 떨어져 있을 때에도 다른 사람에게는 후하게 하고
자신은 항상 적게 가진다.
그리고 모든 근심을 혼자 당한 듯 떠맡는다.

空我子는 我不念我也라
哲人이 處衆에 逸衆而勞我하며
分衆하야 厚衆而薄我하고
同憂以衆하되 有若獨當이니라.

공아자는 아불념아야라
철인이 처중에 일중이로아하며
분중하야 후중이박아하고
동우이중하되 유약독당이니라.

참전계경 제 248조 공아空我 (제2문 제14호)


작성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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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복종의 미학

복종의 미학

 

요즘 세태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그 中 하나는 “복종”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자칫 굴욕스럽거나

손해라는 생각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

그러나 한용운 선생의 시를 음미해 보니

복종의 어머니는 바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전으로 치면 “복종”의 뒷면은 바로 “사랑”이라는 이야기지요.

============================================================

회사에서 상사가 한마디 하면 후배나 부하들이 복종해 줍니다

의견도 있고 할말도 있긴 하지만…

기꺼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라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사랑과 신뢰를 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한용운 선생의 詩 한 편

“복 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해설>

모든 문학 작품은 여러 차원으로 읽힌다.

만해(萬海) 한용운의 <복종>도 여러 차원으로 읽히고

시편의 매혹과 견인력도 바로 그 점에서 울림과 힘을 얻는다.

여기서의 당신 즉 “임”은 우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읽을 수 있다.

사랑은 때로 배타적 헌신을 요구한다.

또 사랑에 빠진 사람은 배타적 희생이나 순종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랑 특히 열정적인 사랑은 독점이나 배타성과 이어져 있다.

헌신과 복종의 강도는 그대로 사랑의 강도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임”은 다시 민족이나 조국이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1919년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일원이며

겨레 사랑과 투철한 반일(反日)정신을 알리는 많은 일화를 남겨놓고 있는 지사(志士)이다. 사저를 지을 때 조선 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삼대가 적선을 해야

살 수 있다는 남향을 마다하고 북향집을 지었다는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일화이다. 만해의 개인사와 연결시킬 때 시편 속의 “당신”을

겨레나 조국이라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겨레나 조국의 명령이나 당부에 복종하는 것울 달콤하다고 생가하기 때문에

많은 우국지사들이 개인적 희생과 헌신을 실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편은 우국지사 한용운이 겨레와 잃어버린 조국에 바치는

간절한 신앙 고백이라 읽어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 작품은 종교 시편이라 읽을 수 있다.

만해 선사는 승적에 있었던 승려이다.

그가 머물러 있으면서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 했던 설악의 백담사는

이제 한국의 명소의 하나가 되어 있으며 그가 남긴 불교 서적은 그 방면의

고전이 되어 있다. 관용과 자비를 설파하는 고급 종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는 성격상 절대적 복종과 귀의를 요구한다.

종교는 표층적이건 심층적이건 유일 종교를 표방한다.

따라서 이 시편에서의 “당신”은 절대자나 초월자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읽힌다. 아니 그렇게 읽을 때 비로소 작품의 의미가 가장 심오하게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대목은 아무래도 울림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한용운의 유일한 시집 [님의 침묵]은 만해가 46세 되던 1925년에 탈고

하여 그 이듬해에 회동서관에서 발행하였다. 그 이후 극소수의 단시(短詩)와

시조를 보여주긴 하였으나 작품으로서의 진경(進境)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으니

다시는 시작(詩作)에 손대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평소에 그가 시작에 열중하였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래서 시집 한 권을 며칠 밤 사이에 써냈다는 확인할 길 없는 소문이 퍼진 것이리라. 습작 과정이 없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의 시집은 놀라움이요 하나의 경이이기조차 하다.

그래서 한용운의 시집은 20세기 한국 문학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선종(禪宗)에서의 득도(得道)가 그대로 탁월한 시적 성취로 이어졌다는 말은

그러므로 설득력이 있다. 일정한 수준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문적 시인의 특징이라고 할 때 만해는 통상적인 직업적 시인은 아니다.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의 아마추어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 수준의

시집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만해의 특징이다.

<출처 : 시 읽기의 방법 /삶과꿈 刊/ 유종호 지음


작성자 : C I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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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대의 입술과 혀를…

그대의 입술과 혀를…

 

길가다 장터에서 친구를 만나거던
그대의 입술과 혀를 마음속에 있는 영혼으로 움직이게 하라!
그리고 그대의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그의 귓속의 귀를 향해 말하라…


작성자 :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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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이 가을이 가기전에 한번

이 가을이 가기전에 한번

 

법정스님이 얼마전에 하신 법문인데요.

가을 한가운데서 성찰에 필요한 재료들이 가득합니다.

—————————————————-

사람의 손으로 빚어놓은 문명은‘직선’입니다.

그러나 본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곡선’입니다.

나무, 나뭇가지, 흐르는 강물, 산과 내, 해와 달을 보십시오. 다 곡선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든 집이라든가 그 밖의 다른 구조물들은 거의 직선입니다.

직선은 조급하고 냉혹하고 비정합니다.

그에 반해 곡선은 여유가 있고 인정이 있으며 운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곡선의 묘미’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中에서)

 

 

 

 

법정스님, 길상사 가을법문

 

 

가을입니다. 가을은 모든 것이 투명합니다.

세상이 투명하고 공기가 투명하며 바람결, 물, 나무들 모두가 투명합니다.

산사에서 사는 저희들은 귀가 굉장히 밝습니다.

방안에 앉아있으면서도 낙엽이 구르는 소리, 풀씨가 익어서 터지는 소리,

다람쥐들이 겨우살이를 위해서 부지런히 열매를 물고 가는 소리까지도

다 들립니다. 가을은 이렇게 투명한 계절입니다.

 

오늘 제가 법문 하러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출발지점에서 종점까지 빤히 보이는 길이라면 어떻게 될까.

강원도에서 길상사까지 직선으로 전혀 거리낄 것 없이 빤히 뚫린 길이라면

어떻게 될까. 뭐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는 없지만

만약 그런 길이 있다면 아마 질려서 운전하는 맛이 없을 겁니다.

얼마나 무료하겠습니까. 졸리거나 사고 나기 마련입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한동안 사고가 제일 많이 났잖아요.

제가 한번 목포까지 그 길을 가봤는데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서 직선이 많더군요. 곡선이 별로 없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길도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앞날을 미리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겁니다.

만약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면 살맛이 안날 겁니다. 모르기 때문에 살아가는 겁니다.

 

여기 직선과 곡선의 상징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빚어놓은 문명은 ‘직선’입니다.

그러나 본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곡선’입니다.

나무, 나뭇가지, 흐르는 강물, 산과 내, 해와 달을 보십시오. 다 곡선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든 집이라든가 그 밖의 다른 구조물들은 거의 직선입니다. 직선은 조급하고 냉혹하고 비정합니다.

그에 반해 곡선은 여유가 있고 인정이 있으며 운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곡선의 묘미’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목적만을 위해서 그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흔히 차를 타고 어디로 간다고 할 때 또는 어떤 집에 몇 시에

도착한다는 예약이 있다면 가는 동안 많은 도정을 거치면서도 거의 도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시간 맞춰서 목적지까지 가려는 의식 때문에 도중에 보이는 사물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표지점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그와 같은 과정이 우리들의 일상이고 순간순간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은 미래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 줄 알아야 됩니다.

순간순간의 쌓임이 세월을 이루고 한 생애를 이룹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우리나라 자살률 통계가 나왔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한 해에 12,000명이 자살을 하는데 특히20~30대가 많답니다. 하루 평균 32명꼴로 자살하는데 이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인 23명보다 많습니다. 물론 자살하는 당사자에게는 죽을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허락받은 세월을 반납하고 도중에서 뛰어내릴만한 이유가 그 당사자한테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목숨을 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살은 혼자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친지들과 이웃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깁니다.

현대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무엇이든지 그 자리에서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참고 기다릴 줄을 모릅니다. 사각 컴퓨터와 인터넷 앞에서 모든 것을 즉석에서 확인하는 조급한 습관 때문에 이런 현상이 오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

 

우리 前세대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참고 기다릴 줄을 알았습니다. 참고 기다림을 통해서 이루어놓은 삶의 축적이 오늘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예전에 비해서 여유롭게 사는 것은

선배들이 참고 기다리면서 가꾸어 놓은 열매들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더라도 서로가 길들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 자리에서 사랑이 익습니까.

세월을 동반하지 않고는 사랑이 성숙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씨앗이 움터서 꽃피고 열매 맺기까지는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이

받쳐주어야 됩니다. 어떻게 뿌리자마자 그 자리에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까. 뜸 들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현대인들 특히 젊은 세대들은

모든 것을 즉석에서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뜸 들일 시간이 없습니다.

 

요즘 같은 전 지구적인 재앙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자연현상은 우연히 오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메아리입니다.

 

개인이 지은 업을 ‘별업(別業)’이라고 하고

여럿이 함께 지은 업을 ‘공업(共業)’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요즘 같은 전 지구적인 재앙은 인류의 오만한 ‘공업’에서 오는 겁니다.

 

전 지구적 재앙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것이 없습니다.

현재와 같은 반자연적인 그릇된 습관부터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 입는 것, 타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반자연적인 행위입니까.

사람은 뭡니까. 대자연속의 한 개체입니다.

개체기 때문에 대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생명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이건 남의 목숨이건 짐승의 목숨이건 식물의 목숨이건

살아있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갖지 않으면 지구는 편할 날이 없습니다.

 

전국 산부인과 집계에 의하면 연간 낙태시술이 35만 건이라는군요.

하루에 1,000명의 어린 생명들이 살해되는 겁니다. 놀라운 일이죠.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이는 생명을 너무 경시 한데서 온 결과입니다.

 

낙태로 모든 것이 깨끗이 끝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업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싹을 꺾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를 의지해서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 생명을 꺾는 것은 큰 죄업이 됩니다. 업이란 두고두고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이란…..

꽃이 만발하고 단풍이 곱게 물든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돕고 도와주면서 살아가는 인정넘치는 그런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이 가을에 다들, 보다 투명하고 따뜻하고 어질고

선량한 이웃이 되길 빌면서 오늘 제 이야기를 이만 마치겠습니다.

 

<출처 : 불교신문 200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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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네가 원하는 그대로 이루어진다 !

네가 원하는 그대로 이루어진다 !

 

“태양은 지구의 주위를 돈다.”라는 말과 “무거운 물체일 수록 빠른 속도로 낙하한다.”

라는 말이 지난 수천년 동안 학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틀림없는 과학적인 사실로 믿어져 왔듯이,육상계에서는 ” 인간은 절대로 1마일(1.6KM)을 4분 이내에 주파할 수 없다.”라는 말이 마치 절대적인 진리처럼 믿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평소에도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하고자 하면 못 할 일이 없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고살던 로저베니스터라는 사람이 이 말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은 정신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한계까지도 초월할 수 있다라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유명한 육상선수는 아니였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달리기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없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그는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습니다.
“인간이 1마일을 4분 내에 주파할 수 없다는 말을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하고자 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을 신조로 삼고있습니다. 내가 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내가 1마일을 4분내에 주파 해 보이 겠습니다.

그러자 제일 먼저 그의 코치가 노기를 띤 얼굴로 달려와 ” 이 정신나간 녀석!너보다 몇 배나 기록이 좋은 선수들도 한 번도 1마일을 4분내에 주파해 본적이 없다.그런데 네가 그걸 할 수 있다고 방송과 신문에 떠들다니! 로저 베니스터! 네 주제를 알아라. 그리고 현실을 직시해라. 너는 1마일을 4분안에 주파하기는 커녕 온세계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육상계에서 매장당하고 말거다. 지금이라도 취소하겠다고 말해라! 라면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에 걸쳐 세계적인 선수들의 기록과 과학적인 수치 등을 제시해가면서 로저 베니스터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납득 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로저 베니스터가 자신의 충고를 전혀 귀담아 듣지 않자 이번에는 저명한 의사에게 제려가 진찰을 받게 했습니다.

로저 베니스터의 신체를 장시간에 걸쳐 정밀 진단한 의사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심폐기능과 혈압 등을 정밀히 측정해 본 결과 1마일을 4분내에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경주를 마친 즉시 심장이 터져서 사망하게 될것입니다”

의사의 진단결과가 발표되자 방송과 언론은 로저 베니스터의 불가능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로저 베니스터는 실패하든지 아니면 성공하더라도 심장이 터져 즉사하든지 둘 중의 하나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로저 베니스터는 보이는 것 만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것을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나의 현재 심폐기능은 1마일을 4분 내로 주파하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심폐기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1마일을 4분에에 달릴 수 없다 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 부정적인 믿음이 나의 심장에 제한을 가한 것이다. 그 부정적인 믿음을 긍정적인 믿음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내심장은 서서히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하는 속도를 이겨내는 심장으로 변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믿으면서 체계적인 운동 계획을 세우고 서서히 자신의 몸을 1마일을 4분네로 주파하는 몸으로 바꾸어 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저 베니스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것은 “상상훈련” 이었습니다.

1마일을 4분 내로 가뿐하게 돌파하고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 속에서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불가능을 극복하였는가를 인터뷰하는 모습을 하루에도 수천번씩 마음속으로 그리고 또 그렸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얼마나 깊고 강렬하게 그렸던지 나중에는 자신이 이미 오래전에 1마일을 4분안에 돌파했으며 그 기록이 육상협회에 보존자료로 등록되었다고 믿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1마일 경주 날

로저베니스터는 자신이 늘 상상해왔던 대로 1마일을 마치 바람처럼 달렸습니다. 그리고 1마일을 4분안에 주파한 세계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심장이 터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로저 베니스터는 경주를 마치고도 기뿐하게 몸을 풀 정도로 정상적인 몸 상태를 유지 했습니다. 이어 열화와 같은 관중들의 환호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온몸에 받게 되었고,그는 각종 텔레비젼프로그램과 언론 메체에서 서로 모셔가려는 인터뷰 0순위의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로저 베니스터가 상상 훈련을 통해 1마일을 4분안에 주파하자 육상계에서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1마일을 4분내에 달리면 심장이 터져죽는 다던 로저베니스터가 해냈다.1마일을 4분안에 주파하고 육상계의 스타가 되었다.우리라고 못할 것 없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라며 1마일을 4분안에 돌파할 수 있다는 세로운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제 베니스터의 상상훈련을 따라한 결과 너나 할것 없이 1마일을 4분내에 돌파하게 된 것입니다.


작성자 : 로제베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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